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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역사] 정책금리 인상에도 대출금리가 오르지 않는 이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유발한 주범은 미국 감독당국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중국도 미국 등 선진국 부동산 시장의 버블을 유발하는 데 큰 열확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왜냐하면 중국 중앙은행이 MBS 등 미국채권을 가장 적극적으로 사들였기 때문이다. 즉, 연준이 정책금리를 올려도 중국이 적극적으로 채권을 사들이는 바람에 대출 금리 상승이 억제됐던 것이다. 당시 중국이 미국 채권을 사들였던 이유는 외환보유고의 급증에 있다.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2001년 말 2천억 달러에서 2003년 초에는 3천억 달러, 2004년 8월에는 5천억 달러, 그리고 2006년 10월에는 1조 달러에 이르렀다. 외환보유고는 기본적으로 만일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돈이기에, 일반적으로 대부분을 달러, 그것도 거래가 잘되는 .. 2021. 1. 7.
[돈의 역사] 은행이 돈을 버는 원리, 불황(코로나)에도 돈을 버는 이유 은행이 어떤식으로 돈을 버는지 알아두면, 경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기본적으로 경제는 돈이 돌아야 좋아지는데 은행이 경제의 혈액순환에 가장 결정적인 기여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3년 카드 위기 때처럼 은행이 식물 인간 상태가 되면 경제성장률은 크게 떨어진다. 기업이나 가계 모두 돈을 빌리지 못해 쩔쩔매는 상황에서 투자와 고용이 제대로 이뤄질 리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은행은 어떻게 돈을 벌까? 정답은 간단하다. 예대 마진에서 충강금과 판관비를 뺀 것이 바로 은행의 이익이다. 충당금이란, 은행들이 돈을 빌려줬다. 떼이는 경우 발생할 비용을 미리 쌓아두는 일종의 보험이다. 핀관비는 판매관리비로, 은행이 고용한 직원에 대한 월급과 빌린 점포에 대한 입대료 등이 포함되는데 판관비는 크게 변.. 2021. 1. 7.
[돈의 역사] 북한 경제가 망가진 근본적 원인 북학이 침체의 늪에서 빠진 가장 큰 이유는 2009년 화폐 개혁 실패 때문이지만, 사실은 김일성이 집권하던 시절부터 이미 저성장의 싹이 자라고 있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된다. 북한에서는 가장 중요한 사회간접자본은 철도다. 1945년 해방 당시, 북한은 3,797KM의 철도망을 가지고 있었다. 남한의 철도망은 3,614KM였으니 두 나라 간 차이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2015년이후 남한의 철도 총연장 길이는 9,001KM로 늘어난 데 비해, 북한은 고작 5,304KM에 불과했다. 남한은 수십 개의 고속도로가 거미줄처럼 깔려 있는 반면, 북한의 고속도로는 평양-개성 구간뿐이며 철도망의 확층(확장)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파일은 아래에 첨부되어있습니다. 출처는 KDI p. 29 특히 기간을 세분화 해보면,.. 2021. 1. 6.
[돈의 역사] 1962년 화폐 개혁 이후에도 한국 물가가 급등한 이유는? 한국 경제는 해방 이후 오랫동안 물가 불안(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1950년대에는 전쟁 비용을 충당하고 전쟁으로 파괴된 생산 시설 등을 복구 하기 위해 화폐를 마구 찍어낸 것이 인플레의 원인이었다. 반면 1960년대 이후에는 수입 물가 상승이 인플레의 원인이 됐다. 박정희 정부가 수출 주도의 경제 성장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이 상승했는데, 환율이 상승하면 해외에서 수입하는 제품의 가격이 상승하고, 이는 다시 수입상의 매점매석을 부추겨 투기가 불붙게 된다. 나아가 적극적인 경제 개발 정챙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자율을 낮게 책정한 것도 물가 불안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기업들이 사업을 추진하는 데 도움을 줄 목적으로 이자율을 낮게 책정했는데, 가계 입장에서는 화폐 개혁의 충격에 낮은.. 2021. 1. 6.
[돈의 역사] 유럽 나라들은 은화의 순도를 얼마나 떨어뜨렸을까? 스페인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만 주화의 품위, 다시 말해 화폐에 포함된 귀금속의 순도를 떨어뜨리는 짓을 한 건 아니다. 영국도 17세기 중반까지는 은화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데 앞장섰다. 1500~ 1799년 사이 정부가 발행한 주화의 귀금속 함량을 떨어뜨리는데 가장 앞장선 나라는 스웨덴이였다. 이는 '30년 전쟁' 참전 중 국왕이 전사하는 등 비극을 겪으며 급격한 재정 위기를 겪었기 때문이르 보인다. 그 다음은 프랑스인데, 1789년 대혁명을 유발한 근본 원인이 재정난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반대로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영국 등 금융 선진국들은 상대적으로 은화의 품위 저하 폭이 크지 않아 이 세 나라가 진정한 의미에서 유럽의 '기축통화' 패권을 다투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탈리아는 1494년 이탈리아.. 2021. 1. 6.
[돈의 역사] 뱅크런(bank run)을 막기위한 장치, 지금준비금과 예금자 보험 이민자 산업저축은행 사례에서 본 것처럼, 은행이 부실해졌다는 소문이 도는 것만으로도 뱅크런이 벌어지곤 한다. 일단 뱅크런이 벌어지면 멀쩡한 은행도 함께 무너질 만큼 사태가 심각하다 보니, 정책 당국은 뱅크런을 막기 위해 그간 많은 고민을 했다. 이 과정에서 나온 두 가지 제도가 바로 지급준비금과 예금자보험이다. 먼저 지금준비금이란, 예금의 일정액을 따르 떼서 중앙은행에 적림하는 제도다. 예를들어 100만 달러의 예금이 들어올 때 90만 달러만 대출해주고, 10만 달러는 중앙은행에 다시 예금한다면 지급 준비율은 10%가 된다. 물론 중앙은행은 지급준비금에 대해 이자를 지급하는데 통상적으로 이를 '정책금리'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예금 종류별로 다른 지급준비율을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지급준비제도만으로는 뱅.. 2021. 1. 5.
[돈의 역사] 서양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을까? 이런 상상을 해보자.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서기 900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디로 가는게 좋을까?" 여러 지역이 떠오르는데, 일단 피해야 할 지역부터 꼽자면 유럽, 그것도 서유럽이다.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치안이 엉망이었고, 보리나 밀을 주로 재배했던 탓에 농업 생산도 형편없어서 900년 전후 서유럽 사람들의 삶은 비참하기 그지 없었다. 특히 서유럽은 도시 발달도 뒤처져 이베리아 반도의 코르도바를 제외하고는 대도시를 찾을 수 없는데, 코르도바도 사실 이슬람인들이 발전시킨 장소이니 '서유럽'이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그런데 이랬던 서유럽이 어떻게 세계를 제패하게 되었을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치열한 경쟁 속에 혁신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1494년의 프랑수근과 16세기 말의 네덜란드군에 의해 시작.. 2021. 1. 5.
[돈의 역사] 네덜란드는 어떻게 부자나라가 되었을까?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기본적으로 무장집단이다. 독점적 이윤을 위해 무자비한 해옫을 취하는 학살자이기도 했다. 이런 면모를 가장 잘 보여준 인물이 4대 동인도 제도 총독이었던 얀쿤(jan coen)으로, 그는 총독 직책을 맡은 이후 이사회에서 "우리는 무역 없이 전쟁할 수 없고, 전쟁 없이 무역할 수 없다." 라고 선언했다. 네덜란드 16세기 초반, 향신료 무역의 대부분을 차지한 후추는 광대한 열대 지역에서 비교적 수월하게 자랐기에 공급을 독점하기는 불가능 했다. 반면 육두구와 정향은 독점 가능성이 높았다. 육두구는 현재 인도네시아의 반다 제도에서만 잘 자랐고, 정향도 인접한 말루쿠 제도의 암본에서만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정향이나 육두구는 재배 지역이 한정적이다 보니, 유통 마진이 어마어마했다. 예를 들.. 2021. 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