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필사의 모든것50

[돈의 역사] 영국이 식민지 통치 방식 많은 사람이 북아메리카와 라틴아메리카가 너무 다른 경로로 가게 된 것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어떤이는 지배자의 차이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북미는 영국의 식민지 였던 반면, 라틴아메키라는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는 것이다. 식민지 통치 방식 그러나 이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 다름아니라 서인도 제도의 바베이도스나 자메이카 등은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이다. 같은 영국의 식민지였음에도 북미는 세계를 주름잡는 선진국으로, 자메이카와 바베이도스는 가난한 나라고 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있었는데, 최근 미국 MIT교수인 아세모글루 등이 발간한 흥미로운 책덕분에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저자들은 북아메리카의 영국 신민지에서는 흑인 노예비중이 10~20%에 불과한 반면, 서.. 2021. 1. 2.
[돈의 역사] 한나라 서역 원정의 이유 한나라 7대 황제인 무제(기원전 141년 ~ 기원전 87년)는 행운아인 동시에 '위기'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훌륭한 선대 황제 덕분에 보물과 식량으로 가득 찬 창고를 물려받았지만, 동시에 경제에 심각한 디플레가 발생한 시대를 살았다. 무제 때 디플레이션이 발생한 건 '셍산력' 회복 때문이었다. 한나라의 5대 황제인 문재때에는 한나라 초기에 비해 곡물 가격이 1/500 정도로 내려갔다고 한다. 다시 말해 돈의 상대적 가치가 500배 상승한 것이다.(비트코인같다.) 곡물 가격이 내려간 이유는 장기간 이어진 안정기에 버려졌던 땅이 다시 일궈지며 식량 생산이 급격히 늘어난 반면, 동전 생산량이 이에 비례해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흑사병 유행 당시 유럽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물론 "곡물 .. 2021. 1. 1.
[돈의 역사] 일본의 주 생산품인 유황의 역사 송나라에서 일본으로의 주된 수출품은 송전과 생가, 도자기였다. 그렇다면 일본에서는 송나라로 어떤 제품을 수출했을까? 일본에서 송나라로 수출한 주력 제품 중의 하나가 규슈 남단의 화산섬에서 채취한 유황이었다. (일본의 광업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1500년대 중반의 일이니, 송나라 시절에 금이 주된 수출 품목이 되기는 어려웠다.) 당시 중국에서는 다음 세 가지 용도로 일본산 유황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었다. (1) 횃불 (2) 약품 (3) 화약 원료 횃불은 유황의 발화 작용을 이요한 것이었으며(오늘날에도 성냥의 주원료) 한방약 내지 농약의 원료에도 유황이 쓰였다. 유황은 인체 필수 원소의 하나로, 살균에 유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횃불과 약품의 수요보다는 화약 원료로써의 수요가 월등히 많았.. 2021. 1. 1.
[돈의 역사] 금속화폐의 최대 문제인 시뇨리지(은의 순도저하) 시뇨리지 로마 제국은 리디아의 주화를 계승한 새로운 주화, '데니리우스'를 제국 전역에 유통시킴으로써 전성기를 열 수 있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전성기는 잠시였다. 정복 전쟁이 중단되면서 더 이상 노예와 귀금속이 유입되지 않은 데다, 유럽의 귀금속 광산이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5헌제(로마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5명의활제)의 마지막을 장식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죽기 전(180년) 세가지 문제가 로마 제국을 장식 하고 있었는데, 첫 번째 문제는 게르만족의 이동이었다. (아우렐리우스 황제도 게르만족과의 전쟁 도중에 사망함.) 두번째는, 노예 유입이 중단되는 가운데 로마 제국 전체의 노동력부족 현상이 심화된 것 나머지 문제는 금육 불안정이 높아진것이었다. 특히 마지막 문제가 로마 제국의 경제에 큰 충격.. 2021.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