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필사의 모든것

[돈의 역사] 한나라 서역 원정의 이유

by 책과함께라면 2021. 1. 1.

한나라 7대 황제인 무제(기원전 141년 ~ 기원전 87년)는 행운아인 동시에 '위기'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훌륭한 선대 황제 덕분에 보물과 식량으로 가득 찬 창고를 물려받았지만, 동시에 경제에 심각한 디플레가 발생한 시대를 살았다.

무제 때 디플레이션이 발생한 건 '셍산력' 회복 때문이었다.

 

 

 

한나라의 5대 황제인 문재때에는 한나라 초기에 비해 곡물 가격이 1/500 정도로 내려갔다고 한다. 다시 말해 돈의 상대적 가치가 500배 상승한 것이다.(비트코인같다.) 곡물 가격이 내려간 이유는 장기간 이어진 안정기에 버려졌던 땅이 다시 일궈지며 식량 생산이 급격히 늘어난 반면, 동전 생산량이 이에 비례해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흑사병 유행 당시 유럽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물론 "곡물 가격이 내려간 게 뭐가 문제냐"라고 반문 할수도 있지만, 곡물 가격의 폭락은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의 삶을 빈곤하게 만든다. 게다가 곡물 가격이 떨어진 상황에서 역병이나 천재지변이 벌어지면, 농민들의 삶은 일거에 붕괴될 위험이 높아진다. 빚을 지고 갚지 못한 농민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땅을 버리고 대지주의 소작농이나 상인의 하인이 되는 수 밖에 없다. 이는 기원후 2세기 로마에서 벌어진 일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 문제를 일거에 해결한 사람이 바로 무제였다.

 

그는 동아시아의 강국 고조선부터 시작해 북방의 영토를 위협하는 흉노를 대상으로 대규모 전쟁을 벌여 경제 내의 디플레 위험을 일거에 털어버렸다.

전근대 사회에 전쟁이 반발했던 이유는 상대가 가진 것을 약탈하기 위한 욗망뿐만 아니라 경제 내에 존재하는 만성적인 디플레위험을 해소시킬 목적도 컸다.

 

당시의 치자들은 뚜렷한 실체가 없는 디플레 문제를 직접 다루는 대신, 통제할 수 있고 분명한 목적이 있는 '전쟁'을 치르는 게 정치적으로 오히려 괜찮은 선택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국고가 바닥날 때까지 치열한 전쟁을 치를 경우, 승리한다면 당연히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패배하면, 수나라처럼 멸망하거나 열토를 잃어버리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민 반란'의 확실한 위험에 비해서는 나은 선택지라 여겼던 것이다. (경제가 굳었을때 돈을 푸는것과 비슷한 맥락일까?)

 

이 대목에서 '전쟁을 치르는 게 어떻게 디플레 문제를 해결할까?' 하고 의문을 품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이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수나라 양제(재위기간 기원후 604~618년)가 고구려를 침공할 때 100만 대군을 이끌고 왔던 것을 예로 들어보자. 물론 100만 명이나 되는 대군이 고구려에 직접 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다만 이 숫자가 내포하고 있는 진실을 감안할 필요가 있는데, 인구가 희박한 변경 지역으로 수십만의 부대를 보내기 위해 많은 수송 병력이 필요하고, 또 대운하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갅버자본의 정비에 많은 인력이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전쟁으로 수많은 젊은이가 고향을 떠나면 농사지을 인력이 부족해지는 것은 물론, 군량미 지출이 늘어나 곡물 비축량이 순식간에 줄어들거나 고갈되어 곡물등 생필품 가격이 다시 상승한다. 물론 무제가 이러한 경제 원리를 알고 전쟁을 일으킨 것은 아닐 것이다, 어쨌든 곡물 가격은 다시 올라갔고 한나라는 다시 부흥기를 누릴 수 있었다.

 

[돈의 역사] 2000년대 미국인들은 왜 부동산에 열광했을까?

2000년대 미국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던 건 무엇보다 저금리 때문이었다. 집은 어느 나라에서나 비싼 재화이다 보니, 자기 돈을 다주고 주택을 구입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부동산 담

hot-review.tistory.co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