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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의 모든것

[돈의 역사] 일본의 주 생산품인 유황의 역사

by 책과함께라면 2021. 1. 1.

 

 

송나라에서 일본으로의 주된 수출품은 송전과 생가, 도자기였다.

 

 

그렇다면 일본에서는 송나라로 어떤 제품을 수출했을까? 일본에서 송나라로 수출한 주력 제품 중의 하나가 규슈 남단의 화산섬에서 채취한 유황이었다. (일본의 광업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1500년대 중반의 일이니, 송나라 시절에 금이 주된 수출 품목이 되기는 어려웠다.)

 

당시 중국에서는 다음 세 가지 용도로 일본산 유황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었다.

 

(1) 횃불

(2) 약품

(3) 화약 원료

 

횃불은 유황의 발화 작용을 이요한 것이었으며(오늘날에도 성냥의 주원료) 한방약 내지 농약의 원료에도 유황이 쓰였다. 유황은 인체 필수 원소의 하나로, 살균에 유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횃불과 약품의 수요보다는 화약 원료로써의 수요가 월등히 많았다고 한다

 

 

즉, 유황의 주된 사용처는 바로 화약이었다.

 

 

 

남송 때 만들어진 닝보의 지방지 <보경사명지>6권과 <개경사명속지>8권에는 일본으로부터의 주요 수입품으로 유황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남송의 관료 포회의 문집 <폐소고략>에는 일본으로부터 수입되는 유황이 '군수'에 공급되고 있다고 적혀 있다. 

이러한 13세기의 상황을 고려하면 일본산 유황이 중국에 유입되게 된 최대 요인은 화약 병기의 발전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유황 온천

송나라 상인들이 일본에서 유황을 수입했던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중국 본토에서 유황의 생산이 적었기 떄문이다. 예전부터 사람들이 이용하던 유황은 주로 화산활동에 의해 생선된, 결정화된 자연산 유황이다.

 

중국에서 자연산 유황의 생산 지역은 동베이, 티베트, 원난등인데 이 지역 대부분이 송나라와 거리가 멀었다.

 

반면, 화약의 또 다른 필수 연로인 초석은 중국에서 풍족하게 생산되었다. 주된 산지는 명 말기의 산업기술서 <천공개물> 하권 <초석>조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쓰촨, 산시, 산둥 등이다. 그래서 16세기 일본이 화약 제조 기숧을 습득한 다음에는 중국한 초석이 일본의 주된 수입품으로 자리하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여둘 것은 일본산 유황에 대한 수요처가 중국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조선왕조실록>성종 권 75 8년(1477년) 1월 정묘 저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지사 강희맹이 아뢰기를, "화약고에 석류황 23만 7천여 근 과 염초 4만 근이 있으나, 이제는 가져와서 바치는 왜인이 없으니, 반드시 다 없어질 때가 될 것입니다."

 유황 비축량은 필시 중앙정부의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조선왕조는 평시에도 화약 원료로서의 유황을 약 23만 7천여 근(약 142톤)이나 비축해 두었던 것이다. 적어도 16세기까지 동아시아의 바다는 송전과 함께 유황 무역이 활발하게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야마우치 신지의 책 <일송무역과 유황의길>(2009)는 적절한 제목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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