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TV란 담보인정비율 Loan to Value로써, 주택 가격에 비해 얼마나 대출을 받을 수 있는지 측정한 것이다. 한국은 투기 과열 지구의 경우 LTV가 40퍼센트인데, 2000년대 중반 미국의 전국 평균 LTV는 80%를 훌쩍 넘기는 수준이다.
LTV의 상승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더 많은 돈을 빌려 주택을 살 수 있도록 허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가 5억원 짜리 집을 사기 위해 자기 돈은 1억원만 있으면 된다는 이야기다. 만일 집값이 20퍼센트 상승해 6억 원이 되면, 이 주택의 소유자는 100% 수익을 얻게 된다. 자기 돈 1억 원을 들였는데 평가 차익이 1억 원발생했으니 말이다. 따라서 집값이 상승할 때에는 돈을 많이 빌리는 게 수익을 높이는 지름길이 된다.
반면 집값이 조금이라도 하락하는 경우에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 5억 원이었던 집값이 4억 원까지 떨어지면, 1억원으로 집을 산 사람의 원금은 허공으로 사라지게 된다. 원금이 허공으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돈을 빌려준 은행이 모를 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은행은 당장에 대출금을 회수하려 들 것이고, 결국 집은 경매 처분되어 대출로 집을 산 사람에게는 미지급 이자에 대한 지불 청구서만 가득 쌓인다. 증권시장에서의 마진콜(margin call)을 떠올리면 된다.
더 큰 문제는 연쇄적인 은행 차압이다. 예를 들어 옆집이 차압으로 넘어가 헐 값에 팔렸다면, 내가 살고 있는 집값도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부동산은 주식처럼 매일 거래되는 게 아니기에, 주변의 시세가 곧 내집의 시세가 된다. 그리고 이 정보는 은행도 공유하고 있기에, 담보물의 가치 하락을 우려한 은행이 대출 회수에 나설 수 있다. 실제로 한국만 하더라고 KB부동산 시세가 대출을 결정하는 잣대로 활용되고 있다.
이상의 사례가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주택 시장에 대한 규제를 완화할 때에는 대단히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택 가격이 상승할 때에는 규제 완화가 약으로 작욕하지만, 지칫 주택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하면 연쇄적인 악순환을 일으키는 촉매 역활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 미국 정부는 이 위험을 과소평가했다. 당시 부시 행정부가 규제를 완화했던 데에는 물론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당시 미국은 날로 높아지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1990년대 초반 이후 이른바 정보통신 혁명이 시작되어 기업의 고학력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반면, 자동화가 촉진되는 가운데 저학력(및 저숙련) 근로자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어든 것이다.
이에 대응해 대학 졸업자 수가 늘어나는 등 고학력자가 늘어나면 되지만, 이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1930년부터 1980년에 사이 30세 이상 미국인의 재학 기간은 10년마다 1년씩 증가해, 1980년에는 1930년에 비해 4.7년이나 길어졌다. 그러나 1980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인의 재학 기간은 총 0.8년밖에 증가하지 않아, 정보통신 혁명에 따른 노동력 수요 변화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건 부모들의 교육 태도가 크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아시아계 이민자와 고소득층 부모들은 자녀 교육에 열정을 쏟는 반면, 저소득층 부모는 상대적으로 열의가 떨어졌다. '학습된 무기력', 다시말해 열심히 노력한들 현재의 상황을 바꿀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고, 정부가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데 적극적으로 투자하지 않은 것도 이러한 문제를 키웠다.
그렇다면 불평등의 세습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을까?
하나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교육 시스템을 개편하고, 특히 저소득층 아이들이 고등교육을 이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책은 단기간에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 또한 자금 투입 과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또다른 방법은 단기적으로 소득 불평등 문제를 즉각 해결할 수 있는데, 바로 규제를 완화해 주택시장을 부양하는 것이다. 저소득층도 집을 쉽게 구입할 수 있게 규제를 풀고, 초기 금리도 이전보다 싸게 제공하면 이들의 자산은 급격히 증가할 수 있다. 자산 가격이 상승하면 불평등 문제도 완회될 것이다. 그러나 2008년 부동산 시장 붕괴 이후, 미국 사회의 불평등이 더욱 심화됨으로써 부시 행정부의 정책은 결국 실패로 귀결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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