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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역사] 일본의 주 생산품인 유황의 역사 송나라에서 일본으로의 주된 수출품은 송전과 생가, 도자기였다. 그렇다면 일본에서는 송나라로 어떤 제품을 수출했을까? 일본에서 송나라로 수출한 주력 제품 중의 하나가 규슈 남단의 화산섬에서 채취한 유황이었다. (일본의 광업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1500년대 중반의 일이니, 송나라 시절에 금이 주된 수출 품목이 되기는 어려웠다.) 당시 중국에서는 다음 세 가지 용도로 일본산 유황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었다. (1) 횃불 (2) 약품 (3) 화약 원료 횃불은 유황의 발화 작용을 이요한 것이었으며(오늘날에도 성냥의 주원료) 한방약 내지 농약의 원료에도 유황이 쓰였다. 유황은 인체 필수 원소의 하나로, 살균에 유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횃불과 약품의 수요보다는 화약 원료로써의 수요가 월등히 많았.. 2021. 1. 1.
[돈의 역사] 금속화폐의 최대 문제인 시뇨리지(은의 순도저하) 시뇨리지 로마 제국은 리디아의 주화를 계승한 새로운 주화, '데니리우스'를 제국 전역에 유통시킴으로써 전성기를 열 수 있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전성기는 잠시였다. 정복 전쟁이 중단되면서 더 이상 노예와 귀금속이 유입되지 않은 데다, 유럽의 귀금속 광산이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5헌제(로마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5명의활제)의 마지막을 장식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죽기 전(180년) 세가지 문제가 로마 제국을 장식 하고 있었는데, 첫 번째 문제는 게르만족의 이동이었다. (아우렐리우스 황제도 게르만족과의 전쟁 도중에 사망함.) 두번째는, 노예 유입이 중단되는 가운데 로마 제국 전체의 노동력부족 현상이 심화된 것 나머지 문제는 금육 불안정이 높아진것이었다. 특히 마지막 문제가 로마 제국의 경제에 큰 충격.. 2021. 1. 1.
[돈의 역사] 원나라 쿠빌라이 칸이 만든 최초의 종이 화폐 쿠빌라이 칸 원나라 쿠빌라이 칸이 만들어 유통한 지폐, 교초는 상피지(뽕나무 껍질을 원료로한 질긴 종이)에 인쇄한 것으로, 유통 과정에서 쉽게 마모되어 낡은 지폐인 `혼초`로 변하였다. 백성들은 혼초를 정부에 가져가 새 지폐로 바꿀 수 있었고, 정부는 1관마다 30퍼센트의 생산 원가 비용을 수취하였다고 전해진다. 아래 사진은 지원보초인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하단부에 적혀 있다. "(이 지폐는) 만기일 전까지 제국의 다양한 영토에서 유통이 가능하다. 보초를 위조하는 자는 사형에 처해질 것이다." [돈의 역사]북한 경제 이토록 파멸의 길로 간 이유는? 북한이 침체의 늪에 빠진 가장 큰이유는 2009년 화폐 개혁 실패 때문이지만 사실은 김일성이 집권하던 시절부터 이미 저성장의 싹이 자라고 있었다는 점을 놓쳐.. 2021. 1. 1.
[돈의 역사] 조선의 삼베는 어떻게 화폐가 되었을까? 우리나라는 삼배가 오랫동안 화폐의 역활을 수행했다. 1123년(고려 인종 1년)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은 다음과 기록한 적있다. "상설 점포가 없고 다만한낮에 정기시가 열려 남녀노소 관리들이 각기 소유한바로교역한다. 화폐제도가없어 오로지 모시와 은병으로 그 가치를 해아리고,일상용품 중 사소한 물품으로 모리 1필이나 은병 1냥에 못 미치는 것은 소량의 쌀로 값을 치른다. 그런다 백성들이 오랫동안 그 습속에 안주하여 스스로 편하게 여긴다." 조선의 삼베 서긍이 고려에 화폐제도가 없다고 한 것은 송나라처럼 주화를 사용할 줄 모른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실물화폐 경제였던 고려 사회에서 은병은주로고액 거래에 사용되었도, 그 다음은 모시, 소액 거래에는 쌀이 사용됐다. 물론 주된 거래 수단은 삼베였다. .. 2021. 1. 1.